[독자 마당] 새벽 6시, 난이 주는 위로
눈을 뜨니 벽에 걸린 전자시계의 숫자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다. 오전 6시10분. 매일 6시 전후로 잠이 깨는 습관은 이제 익숙하다. 거실로 나가 남쪽 창의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면, 눈부신 아침 햇살이 쏟아진다. 제일 먼저 시선이 닿는 곳은 작은 탁자 위의 난(蘭) 화분들이다. 올해 2월부터 한 송이씩 피기 시작한 꽃들은 이제 제각기 만개하여 더없이 화사한 얼굴로 웃고 있다. 작년 봄과 여름, 지인들에게 선물 받은 난 화분 세 개는 이삼 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한 송이씩 시들더니 톡, 톡, 소리없이 떨어져 버렸다. 결국 가을이 되자 젓가락보다 가는 기둥에 앙상한 가지 몇 개만 남은 채 마치 죽은 화분처럼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 생명을 다했다 생각하고 버렸을 화분이다. 하지만 10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가 떠올랐다. 친구 집에서 꽃이 다 져버린 난 화분을 얻어와 기어이 다시 꽃을 피워내고 아이처럼 기뻐하던 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나도 한번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꽃집에 가서 가지치기와 물 주는 법을 물었다. 그리고는 기다렸다. 한동안 아무 소식 없던 마른 가지에 어느 날 좁쌀만 한 돌기가 맺혔다. 그것은 이내 팥알만큼 자라나더니, 이윽고 앙증맞은 꽃봉오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세 개의 화분은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부지런히 생명의 기지개를 켰다. 지난 2월, 마침내 가장 먼저 커진 봉오리 하나가 활짝 터졌다. “아, 내가 꽃을 피웠네! 꽃이 살아났어!” 기쁨에 겨워 식구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얘들아, 할머니가 꽃 피웠어! 어서 와 봐, 어서!” 처음에는 한 송이 핀 것을 보고 시큰둥하던 아들과 며느리도 이내 다가와 들여다본다. 한 달쯤 지났을까. 흰색, 분홍색, 그리고 자주색 무늬를 가진 세 화분의 난들이 서로 사랑하듯 모두 활짝 예쁜 얼굴을 내밀었다. 식구들이 아직 잠든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만나는 꽃들에게 나는 속삭인다. “예쁘다, 정말 예쁘게 피었어.” 친구가 꽃도 칭찬하면 알아듣는다고 말했는데, 정말인가 보다. 오늘 아침도 가장 먼저 나의 작은 정원과 마주한다. “잘 잤니? 오늘도 참 예쁘구나.” 친구의 말처럼 칭찬을 알아듣는 것일까. 나의 인사에 활짝 핀 꽃들이 화답하며 웃는 듯하다. 죽은 줄 알았던 화분 속 뿌리에 생명력이 있어 다시 꽃을 피웠듯이, 돌아가신 나의 언니도 언젠가 하느님께서 생명력을 넣어 주신다면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꽃의 부활처럼, 그날을 기다려본다. 정현숙·LA독자 마당 새벽 난이 흰색 분홍색 자주색 무늬 여름 지인들